정현(한체대)은 올해 만20세(96년5월19일생)로 2014년 프로에 진입했으며 현재(5월29일자 ATP랭킹) 세계 랭킹 111위다. 정현은 이형택 이후 한국 테니스를 이끌어갈 희망이다.
호주 출신의 닉 키르기오스는 올해 21(95년4월27일생)세, 정현보다 1살 많다. 2013년 프로 데뷔 했으며 현재 세계랭킹 19위다. 키르기오스는 레이튼 휴이트 이후 호주의 테니스를 이끌어가는 주목으로 성장하고 있다. 신체는 정현이 185cm/83kg, 키르기오스가 193cm/85kg이다. 둘 다 오른손 잡이에 양손 백핸드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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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오스가 다리 경련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
2014년, 닉 키르기오스는 자국에서 열리는 호주오픈으로부터 와일드 카드를 받는다. - 그 해 와일드 카드 8장 중 호주오픈 주최측은 자국 선수들에게 5장의 와일드 카드를 사용했고, 그 혜택을 받아 출전한 선수는 닉 키르기오스 외에도 조던 톰슨(22세,94위), 타나시 코키나키스(20세,226위), 제임스 덕워스(24세,170위), 샘 그로스(28세,100위)였다. 5명의 와일드 카드 선수 중 3명의 선수가 1라운드에서 고배를 마셨고, 닉 키르기오스와 타나시 코키나키스가 2라운드 진출에 성공했다.- 닉 키르기오스는 1회전에서 독일의 벤자민 베커를 세트 스코어 3대1로 누르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2라운드 상대는 프랑스의 베놋 페어. 닉 키르기오스는 베놋 페어를 맞아 1,2세트를 타이브레이크에서 이기고 3세트를 4-6으로 내줬다. 4세트 중반, 키르기오스가 다리 통증을 호소했다. 엔드체인지시에 경련에 대한 치료를 받았으나 키르기오스는 경련이 계속 있는 듯 다리를 계속 절뚝거렸다. 그러나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호주 국민들은 키르기오스의 고통스러운 모습에 자신의 아들이 경기장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처럼 안타까워 했다. 결국 경기는 페어가 3대2로 역전하며 끝이 났다. 경기를 관전한 호주 국민들은 승자인 베놋 페어 보다는 그 고통 속에서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은 닉 키르기오스에게 더 큰 박수를 보냈다.
이후, 닉 키르기오스는 투어 무대에서 승승장구했다. 윔블던 64강에서 리샤르 가스케를 꺾더니 16강에서 라파엘 나달을 무찔러 버렸다. 나달은 그 당시 세계랭킹 1위로 당연 우승 후보 1순위였다. 메이저 대회에서 100위권 밖의 선수가 랭킹1위를 꺾은 것은 1992년 이후 처음 이었다. 144위, 19살의 어린 닉 키르기오스가 1위를 침몰 시키고 8강에 진출하자 호주는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의 언론은 난리가 났다. 우리나라에서도 당연 윔블던 톱 이변의 하나로 많은 언론에서 기사화 했다. 이후, 키르기오스는 US오픈에서 32강, 이듬해 호주오픈에서 다시 8강에 오르며 자신의 테니스를 견고히 구축해 나갔다.
닉 키르기오스는 그리스인 아버지와 말레이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지중해성 기후로 정열적이면서 낙천적인 성격의 그리스인의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일까? 닉 키르기오스는 코트에 들어서면 자신의 성격을 그대로 나타냈다. 종횡무진 코트를 누볐고 시시때때로 가벼운 쇼맨십으로 자신의 경기를 관전하고 있는 관중들을 즐겁게 했다. 키르기오스는 길들여 지지 않은 코트의 야생마와도 같은 성격으로 인해 ATP(남자프로테니스협회)로 부터 1만달러의 벌금을 부과 받는 등 수 많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정현, 2014년 프로로 데뷔한 시점의 정현 랭킹은 336위였다. 그해 연말 랭킹은 173위로 마감했다. 그리고 지난 해 4월 미국 조지아주 대회에서 열린 서배너 챌린저대회에서 우승한 후 랭킹은 104위에서 88위로 올랐다. 이형택 선수 이후 우리나라 선수 중 두 번째 ATP랭킹 100위에 진입한 선수가 됐다. 19살 정현의 랭킹은 쑥쑥 올랐다. US오픈 2라운드에 올라 톱 플레이어인 스탄 바브링카(스위스)와 비록 0대3으로 패했지만 모두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다. 그 후 카오슝 챌린저에서 우승하며 랭킹 포인트 125점을 획득하며 랭킹은 더 올랐다. 정현의 성장과 함께 국내 팬들의 기대는 커져갔다. 정현의 2015년 연말랭킹은 세계 51위를 기록했다.
정현의 급속한 성장에 국내 테니스인들의 생각은 둘로 나뉘었다. "일본의 니시코리와 어깨를 견줄만큼 성장할 것이다"라는 희망론과 "투어 2년차는 자신의 랭킹을 지켜가며 성적을 내야한다. 올해는 힘들 것이다"라는 비관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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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이 2015US오픈 바브링카와의 경기에서 중요한 포인트에서 에러하자 악을 쓰고 있다. |
2016년 정현은 51위로 시작했다. 그러나 5월 말 현재 랭킹은 111위(5월30일자)다. 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현에게는 이 5개월이 참사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지난해 획득했던 포인트들을 지키지 못하고 랭킹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호주오픈에서 정현은 지금까지 써 오던 던롭 라켓에서 요넥스 라켓을 들고 나타났다. 정현은 1라운드 탈락했다. 정현의 상대는 세계1위 노박 조코비치였기에 정현의 패배는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조코비치와 정현의 경기를 지켜 본 국내 테니스 팬들은 "조코비치를 맞아 그래도 잘 싸웠다" "정현을 데리고 조코비치가 몸을 푼 경기였다"라는 2가지로 크게 나뉘었으나, 정현의 경기력에 아쉬움을 표하는 비중이 많았다. 그리고 지난 해 우승했던 부산오픈에서 1라운드 탈락에 이어 서울오픈은 부상으로 기권했다. 정현의 부진에 랭킹은 자꾸만 떨어졌고 국내 테니스 팬들은 정현의 승리에 목이 말랐다.
정현이 첫 본선 자동 출전한 프랑스 오픈에 국내 팬들은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정현보다 어리고, 랭킹도 한 참 낮고, 상대전적에서 2승1패로 앞서 있었기에 1승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정현은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세계랭킹154위, 쿠엔티 알리스에게 세트 스코어 0대3(1-6 4-6 4-6)으로 패했다.
알리스의 서브와 포핸드는 정현이 막아내기엔 너무 강력했다. 정현의 장점인 백핸드와 랠리 싸움은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알리스는 장기 랠리로 끌고 갈 생각이 없는 듯 3구와 5구에 샷을 끝냈다. 알리스는 자신의 포핸드로 승부를 걸어왔고 백핸드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정현과 알리스의 경기는 1시간 36분만에 끝이 났다.
국내 언론과 팬들은 정현의 패배 요인으로 첫 번째 서브, 두 번째 포 핸드를 지적했다. 이 두 가지는 투어 선수에게 있어서 뗄래야 뗄 수없는 필수 불가결한 기술이다. 테니스에 있어서 다른 선수에 비해 서브 하나, 포 핸드 하나만 확실히 좋아도 투어 선수로서 일정 수준의 성적과 랭킹을 낼 수 있기에 서브와 포핸드는 그 어떤 것보다 매우 큰 무기다. 당연 정현 선수가 세계적인, 좀 더 높은 레벨의 투어 선수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모두 기술적인 수준을 현재보다 많이 높여야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무기는 결코 쉽게 가질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세계에 통하는 무기를 소유 하려면 오랜 시간 동안 수련하며 갈고 닦아야 한다. 어렸을때 부터 소위 이기기 위한 '넘겨 빵' 해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무기다. 정현은 이미 투어를 뛰고 있는 선수로 성장했다. 자신의 폼을 바꾸는 것은 라켓을 바꾸는 것 보다 훨씬 더 힘들다. 때문에 투어 선수가 자신의 폼을 전폭적으로 수정한다는 것은 투어 성적을 포기해야만 하는 모험에 가까운 일이다. 그 모험을 하느냐 마느냐는 결국 자신에게 달려있다.
이미 만들어진 칼을 새로이 명품 칼로 만드려면 칼을 다시 녹여야 한다. 명품을 만들기 위한 철저한 밑그림을 그린 후, 철을 달구고 담금질해야 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선책을 선택해야 한다. 차선책은 무뎌진 칼날을 숫돌로 잘 갈아 날을 섬뜩하게 세우는 것이다.
정현의 서브, 포 핸드는 서서히 바꿔 나감과 함께, 자신의 강점인 백핸드와 멘탈을 강화 시켜야 한다. 실력을 키우는 방법에, 안 되는 것을 보완하는 것도 있지만 잘 하는 것을 더 잘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알리스와의 경기에서 정현이 획득한 대부분의 포인트는 백핸드 싸움에서 나왔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잘 안되는 것을 바꾸는 것보다 잘하는 것을 좀 더 개선시키는 방법이 훨씬 빠르다.
여기에 또 한가지 언급하고 싶은것은 정현의 멘탈이다. 정현의 멘탈에 대해 정현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도 "매우 좋다"고 말한다. 그런데, 최근 정현의 경기는 그 말에 의심이 들게 한다. 기술력, 그날의 컨디션, 멘탈은 승리의 가장 큰 요소들이다. 기술력의 부족을 정신력이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여자 세계랭킹 1위인 세레나 윌리엄스는 자신의 기를 살리고 상대편의 기를 누르기 위해 중요한 포인트를 끝낸 후 상대편을 향해 "컴 온"을 매우 길게, 그리고 매우 크게 소리친다. 닉 키르기오스 역시 마찬가지다. 위에서 닉 키르기오스를 길게 언급한 것은 닉 키르기오스의 마인드를 정현이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키르기오스는 정열적으로 코트에서 움직인다. 자신이 이기고 있을 때는 승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지고 있을 때는 승기를 잡기 위해 쇼맨십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현과 같은 나이의 보르나 코리치 역시 자신이 포인트를 땄을 때, 또는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의 화이팅은 정현 선수보다 훨씬 더 강하게 한다. 정현과 알리스의 매치에 대해 한 전문가는 "기술력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기려는 악착같은 모습, 뒤지고 있는 경기를 반전하려는 화이팅이 매우 부족해 보여 아쉬웠다"고 정현의 경기에 대해 평했다.
전반적으로 동양 선수들이 상대편을 배려하는 마음이 너무 크다 보니 상대편이 싫어할 만한 행동을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코트에 들어서면 검투사가 되어야 한다. 검투사는 상대편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야 한다. 정현은 최근 악착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현은 지난해 US오픈 2라운드 바브링카와의 경기에서 게임이 팽팽하게 가다가 포인트를 잃자 '악'을 쓰듯 큰 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은 기존에 봤던 정현이 아니었다.
기술적인 부분은 한 순간에 이룰 수 없다. 그러나 멘탈의 강화는 기술적인 부분에 비하면 훨씬 빠른 체득이 가능하다. 실력이 높으면 멘탈도 당연 따라간다.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과 멘탈적인 부분을 따로 떼어 놓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기고자 하는, 한 단계 올라 서겠다는 욕망 역시 기술적인 부분 외의 승리의 중요한 부분임은 부인할 수 없다.
테니스는 매너 경기다. 코트 안에서나 밖에서 좋은 매너는 선수를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프로 선수에게 있어서 성적과 매너 어느것이 우선 순위일까? 매너 좋지만 성적 좋지 않은 선수는 코트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나 성적 좋은 악동은 살아 남는다. 조코비치도 세계랭킹 1위 되기 전 매너에 대해서는 평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조코비치의 매너에 대해 특별히 혹평하는 사람은 없다. 프로 선수에게 코트 안에서의 우선 순위는 좋은 매너보다는 좋은 성적이라는 반증이다.
이런 면에서 정현은 닉 키르기오스를 벤치마킹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키르기오스의 좋지 않은 언행을 따라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가 어떻게 코트에서 자신과 관중들에게 활력을 불어 넣는지 배워야 한다. 지난 해, US오픈 2라운드 바브링카와의 경기에서 보여줬던 모습과 정신력, 무조건 1세트에 1시간을 버티자 했던, 악을 쓰며 세계 4위에게 한 번 해보고자 했던 그 야수 같은 모습을 윔블던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