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상하이 마스터스를 찾았던 해가 아마 2012년 테니스피플 기자 시절 이었습니다. 이후 더 테니스를 만들었고, 테니스를 좋아하는 분들과 세계적인 대회를 함께 보러 가는 일도 제 손으로 하나씩 꾸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상하이 마스터스, 차이나 오픈, WTA 파이널스….돌아보면 대회 이름마다 함께했던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어느 선수가 이겼는지, 스코어가 몇 대 몇이었는지는 기억에 남지 않아도 그곳에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는 추억이 되어 오래 남습니다. 테니스가 좋아 떠났던 여행이, 시간이 지나면 사람을 기억하는 여행이 되는 모양입니다.
런던에서 열리던 ATP 파이널스도 그렇게 함께 가보고 싶었습니다. 미리 현지를 찾아 답사까지 마쳤지만, 코로나19가 세상을 멈춰 세웠습니다. 준비하던 여행도, 다음 대회를 기다리던 마음도 한동안 접어두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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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롤랑가로스 투어단 |
그러다 지난해 다시 상하이로 향했습니다. 오래 멈췄던 투어를 다시 시작했고, 올해 5월에는 롤랑가로스를 찾아 로마를 비롯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함께 여행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2026년 가을, 저는 또 한 번 상하이 마스터스 투어단을 모집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었습니다. 지난해에는 16강과 8강을 관전하는 일정으로 투어를 꾸렸습니다. 대회가 무르익는 시기이고, 경기와 관광을 조화시키기에도 무난한 선택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다른 곳에서 진행하는 상하이 투어 역시 대부분 이 무렵에 맞춰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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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상하이 마스터스 투어단(앞줄)과 현지 클럽의 교류전 단체사진 |
하지만 여러 차례 투어를 진행하면서 마음에 남은 숙제가 있었습니다. 같은 테니스를 좋아해도, 여행에서 바라는 것은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관광을 조금 덜 하더라도 경기를 한 경기 더 보고 싶어 합니다. 누군가는 세계적인 선수의 경기도 보고, 모처럼 찾은 상하이의 명소도 여유 있게 돌아보고 싶어 합니다. 또 누군가는 단 한 경기를 보더라도 우승이 결정되는 마지막 승부의 현장에 있고 싶어 합니다.
모두에게 똑같은 일정을 내밀면서 모두가 똑같이 만족하기를 바라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투어를 세 번으로 나눴습니다.
1차는 테니스를 마음껏 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1·2라운드를 중심으로 꾸렸습니다. 많은 선수가 대회에 남아 있고, 여러 코트에서 경기가 펼쳐지는 시기입니다. 보고 싶었던 선수들을 찾아다니며 테니스에 푹 빠져보자는 구상이었습니다.
2차는 16강과 8강 관전에 상하이 관광을 조화시켰습니다. 코트에서의 긴장감과 여행지에서의 여유를 함께 누리는 일정이었습니다. 상하이 투어를 진행하는 대부분의 곳이 이 일정에 맞춰져 있습니다.
3차는 준결승과 결승을 위한 특별한 여행이었습니다. 대회의 마지막에 남은 선수들, 우승을 향한 마지막 승부, 그리고 챔피언이 탄생하는 순간을 함께 지켜보는 투어였습니다.
세 번의 출발에는 하나의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함께하는 분들이 가장 만족할 수 있을까.’ 제가 투어를 준비할 때 가장 오래 붙잡고 있는 질문입니다. 그 질문에 답하는 것 중 하나가 '2일 관전 → 3일 관전'으로의 변경입니다.
참여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가격은 분명 중요한 기준입니다. 저 역시 합리적인 비용을 위해 애씁니다. 다만 가격표의 숫자만으로 여행의 가치를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지 않은 돈을 썼어도 돌아오는 길에 “참 잘 다녀왔다”는 마음이 들면 그 여행은 충분한 값어치를 한 것입니다. 반대로 저렴하게 다녀왔어도 아쉬움만 남는다면, 마냥 좋은 선택이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지향하는 것은 늘 같습니다.
가장 합리적인 가격으로, 가장 오래 남을 만족을 드리는 것.
저는 여행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아니라 테니스를 취재하는 기자입니다. 투어단을 모집하고 나면 얼마나 남을지를 계산하는 마음보다, 함께하는 분들에게 무엇을 더 보여드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마음이 제일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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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의 틈만 있으면 기사를 써야 한다. 사진=김미숙 님 |
그러다 보니 여행 중에 듣는 말 한마디도 쉽게 흘려보내지 못합니다. 이런 일정이 있으면 좋겠다, 저곳에서는 시간을 조금 더 보내면 좋겠다, 다음에는 이런 경기를 보고 싶다….
물론 모든 의견을 한 번에 반영할 수는 없습니다. 여럿이 함께하는 여행에는 함께 지켜야 할 시간과 일정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좋은 의견은 마음 한쪽에 남겨둡니다.
‘다음에는 꼭 한번 그렇게 해봐야겠다.’ 올해의 세 가지 투어도 그렇게 모아둔 생각들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다고 실제 여행이 구상한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습니다. 2차와 3차는 비교적 계획에 맞춰 진행했지만, 경기 관전을 가장 많이 하려던 1차에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대구고 동창생들과 함께 오신 아내분들은 한 분을 제외하고 테니스를 하지 않는 분들이셨고, 그 팀은 자연스럽게 상하이를 둘러보는 일정의 비중이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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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에 함께한 대구고 동창생 부부팀 |
경기를 중심에 두고 준비한 저로서는 조율해야 할 부분이 생긴 셈입니다. 동시에 다시 배우기도 했습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같은 도시로 와도, 누군가에게는 테니스 여행이고 누군가에게는 배우자와 함께하는 소중한 해외여행이라는 것을.
대진이라는 변수도 있었습니다. 관전 투어를 준비하면서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불가항력적인 부분입니다. 항공편과 숙소, 이동 일정은 준비할 수 있어도 좋아하는 선수를 어느 날까지 볼 수 있을지는 약속할 수 없습니다.
올해도 그랬습니다. 가장 인기있는 선수라 할 수 있는 조코비치는 자신의 첫 경기였던 2회전에서, 알카라스는 3회전에서 대회를 마쳤습니다. 두 선수를 기대했던 2차와 3차 참가자들에게는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즈베레프가 준결승까지 올라왔지만, 마음속에 그려두었던 대진을 모두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1번 시드 즈베레프와 2번 시드 알카라스가 결승에서 만났다면 어땠을까. 저 역시 그런 상상을 했습니다. 하지만 테니스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결말을 미리 정해두고 펼쳐지는 경기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탈락은 다른 누군가에게 평생 잊지 못할 승리가 됩니다. 우리가 기다리던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서 새로운 주인공이 태어나기도 합니다. 지난해에도, 올해도 결승 무대의 선수들은 자신의 첫 마스터스 결승이자 우승, 준우승의 타이틀이었습니다.
관전 여행의 아쉬움과 매력은 어쩌면 같은 공간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과를 알 수 없기에 먼 길을 떠나고, 바로 그 현장에서 함께 놀라고 안타까워하는 것이니까요.
이번 1~3차 투어에 최종적으로 함께한 인원은 60명이 조금 넘었습니다. 서울과 경기, 춘천과 동해, 경산과 대구, 부산과 창원, 거제도에서 각자의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상하이로 오셨습니다.
구성원 중 테니스 부부가 2/3를 차지했으며 테니스를 전혀 하지 못하지만 오로지 경기 보는 것을 좋아해서 참여하신 부부도 계셨습니다. 봄날의 롤랑가로스 여행에 함께했던 분들도, 지난해 상하이를 함께 다녀온 뒤 올해 다시 신청해주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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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삼청코트 화목클럽 회원들. 이들의 다수가 상하이, 롤랑가로스, WTA파이널스, 하노이에 함께했다 |
처음 만난 인연도 반가웠지만, 다시 찾아주신 얼굴을 마주할 때의 마음은 또 다릅니다. 지난 여행이 그분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는 뜻일 테니까요. 투어를 준비하는 사람에게 그보다 든든한 응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끝내 함께하지 못한 분들도 떠오릅니다. 개인 사정이나 가족의 일, 건강 문제로 출발 직전 투어를 포기한 분들이 계셨습니다. 상하이까지 오셨다가 가족의 부고를 접하고 일정을 마치지 못한 채 귀국한 분도 계셨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나니, 함께 출발해 함께 돌아온다는 평범한 일이 실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참가자들에게 한 가지를 부탁드렸습니다.
“이 투어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본인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다소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최대한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해주세요.”
낯선 곳에서 여러 사람이 움직이다 보면 크고 작은 불편은 생기기 마련입니다. 취향도, 생활 방식도, 여행의 속도도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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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어단의 식사시간을 함께한 변검 공연 |
그런데 이번 투어에서는 그 부탁이 제 말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참가자들이 함께 지켜주셨습니다. 정해진 약속을 어김없이 잘 지켰고,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스스로 배려했습니다. 60명이 넘는 분들과 세 차례에 걸쳐 움직이는 동안, 누군가의 행동 때문에 모두가 곤란해지는 불미스러운 일도 없었습니다.
투어를 이끄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고맙고, 또 고마운 일입니다. 우리끼리 펼친 친선경기도, 치중 경기장에서 함께 지켜본 승부도, 상하이를 돌아본 시간도 그렇게 좋은 기억이 되었습니다.
준비하는 동안에는 일정표를 보고, 시간을 확인하고, 다음 이동을 생각하느라 정작 그 순간을 충분히 누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나면 뒤늦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함께한 사람들이 만들어준 편안함, 약속을 지켜준 덕분에 무사히 지나간 하루, 서로 배려했기에 즐거울 수 있었던 시간들입니다. 제가 준비한 것은 여행의 일정이었지만, 그 일정을 좋은 추억으로 완성해주신 것은 참가자분들이었습니다.
‘최고의 만족, 또 함께하고 싶은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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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투어단의 엄지 척 ^^ |
제가 바라는 목표에 이번 여행이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지는 함께한 분들이 판단하실 일입니다. 다만 저 스스로 소중하게 여기는 자부심은 있습니다. 테니스 기자로 오랫동안 현장을 다니며 쌓은 경험이, 함께하는 분들의 여행을 조금 더 깊이 있고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눈앞의 경기를 함께 보고, 선수와 대회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고, 현장에서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 그렇게 여행을 마친 뒤에도 다시 꺼내볼 이야기가 있는 투어를 만들고 싶습니다.
다녀온 분들이 다음 여행에도 더 테니스를 떠올려주신다면, 그 마음이야말로 제가 계속 이 일을 준비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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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투어단의 엄지 척 ^^ |
이제 저는 2027년을 준비합니다. 1월에는 첫 그랜드슬램인 호주오픈, 4월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트를 품은 몬테카를로 마스터스, 9월에는 남녀 경기를 함께 볼 수 있는 차이나 오픈, 그리고 다시 가을의 상하이 마스터스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테니스를 보고, 전문 기자와 테니스 이야기를 나누고, 낯선 도시에서의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여행. 그 세 가지 즐거움을 더 알차게 담아보려고 합니다.
아마 다음 여행에도 고민은 많을 것입니다. 더 좋은 일정은 없을지, 무엇을 더 준비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함께하는 분들이 만족할지 또 오래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다시 준비합니다. 올해 함께한 분들 가운데 또 내년에 함께 하시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테니스 해외 투어를 한 번도 안 간 분은 있어도 한 번 가본 분은 없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다음 출발에도 이 투어 후기를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께서 함께해주신다면 참 반갑겠습니다. 함께 하고 있는 분들과의 인연을 축적하고, 처음 인사하는 분들과 또 다른 추억을 만드는 일도 기대됩니다.
2012년 무렵 처음 찾았던 상하이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기자로 시작한 길에 어느새 많은 분의 여행과 추억이 포개졌습니다.
2026년 상하이 마스터스는 끝났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우리는 또 전국 각지에서 라켓 하나 들고 웃으며 만나 또 하나의 투어를 나서게 될 겁니다. 그때 누군가 “그때 상하이에서 말이야…” 하고 이야기를 꺼내는 날, 우리는 잠시 그곳으로 돌아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경기를 보고, 함께 여행하고, 테니스 이야기로 하루를 채웠던 그 가을로. 그때 여러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면, 저는 이번 여행을 참 잘 꾸렸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여행이 끝나고 메세지를 남겨 주셨습니다. 아래 메세지는 3차 투어에 함께 하셨던 류미숙 님의 메세지 입니다. 제가 받은 맨 마지막 소감 메세지로 이 투어기 후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모두들 여독은 푸셨는지요? 저희 여행기를 자상하게 다 기록해 주셨네요. 편안하게 테니스 경기 직관만 하고 여유로운 여행을 할 것 같았는데 집에 돌아오니 빡셨었구나 싶더라구요. 그만큼 알찼다는 거겠지요. 저흰 긴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인데도 이번 짧은 여행의 여운이 더 많이 남네요. 사실 아침에 기사 올리신거 찾아서 읽어 보았답니다. 아직도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오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이런 여행도 해봤다고 가장 자랑할만한 여행이었던 것 같아요. 돌아와서까지 이렇게 여행을 꽉 채워주신 국장님, 감사합니다. 다음 테니스여행에서 또 만나뵙길 기대해 봅니다."
■ 더 테니스와 함께 상하이 마스터스 다녀오신 분들(가나다 순)
▶ 1차: 강병빈, 권원희, 김경식, 김기홍, 김남석, 김민수, 김성우, 김태원, 문경구, 문희란, 박대식, 박시하, 박옹휘, 박은희, 박희정, 백승철, 설화영, 송순희, 유은희, 이성기, 이용봉, 이춘우, 이협우, 정경흠, 정범식, 정숙희, 조성진, 채선희, 한상이, 한상준, 황재선 이상 33명.
▶ 2차: 곽동일, 김경순, 김성우, 김영란, 김영진, 김정림, 김중모, 나수진, 박성웅, 박은영, 박인선, 신경정, 우미애, 우주영, 윤동미, 이연실, 이영진, 정승현, 조애란, 진미선, 최승일, 홍영실, 황경옥 이상 23명
▶ 3차: 김미숙, 류미숙, 서왕균, 이상열, 전덕성, 이상 5명.
▷ 개인사, 가정사로 마지막에 함께하지 못하신 이은경, 지연수 님께 아쉬움을 전하며, 투어단에 합류코저 했으나 암투병 중 고인이 되신 이상기님의 명복을 빕니다.
▷ 투어 진행에 고생하신 (주)여행친구 김성우 대표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글= 방극종 기자, 사진=2026 더 테니스 상하이 마스터스 투어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