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켓에 볶이고, 결승에 홀리고…상하이의 마지막 다섯 사람
    • 33명, 22명, 그리고 5명.

      올해 상하이 마스터스 관전 투어의 회차별 인원이다\. 숫자는 점점 줄었지만, 마지막 팀을 맞기까지의 마음고생은 정확히 반대로 커졌다.

      1차와 2차가 순조롭게 출발하는 동안, 준결승과 결승을 보는 3차 팀은 출발한다는 말조차 자신 있게 할 수 없었다. 비행기가 없는 것도, 호텔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티켓이 없었다.
      테니스 보러 가는 여행에서 테니스 티켓이 없다니.  밥 먹으러 오라고 초대해 놓고 쌀독을 들여다보는 심정이었다.

      지난봄 롤랑가로스 투어 때도 그랬다. 투어 가격을 확정하고 나니 전쟁 여파로 각종 비용이 뛰었다. 거기에 센터코트 입장권 확보까지 꼬이면서, 투어를 준비하는 건지 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몇 달 만에 상하이에서 속편을 찍고 있었다
      ‘나는 왜 이럴까. 왜 내가 하는 일마다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내린 결론은 이랬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길로 자꾸 들어가기 때문이다.

      롤랑가로스 관전도, 상하이 마스터스 결승 관전도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투어는 아니었다. 지금이야 익숙해진 테니스 경기 유튜브 중계와 온라인 대진표 공개도, 국내에서 내가 최초로 시도했고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었다. 특히 대진표 공개는 많은 분들이 환호 했으나 일부 자신의 대회 출전을 숨기고 싶어하는 이들 때문에 심리적인 불편함이 참많았었다.

      처음 길을 내는 사람은 앞을 보며 걷는 것 같지만, 실은 발밑을 더 많이 본다. 어디가 웅덩이인지, 어디서 넘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길을 잘 못 들면 되돌아 나오기에 벅차고, 순간 잘 못 보면 낭떠러지다. 

      길이 나고 나면 뒤따르는 사람들은 조금 더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좋은 일이다. 다만 길을 낸 사람의 주머니까지 두둑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경험으로 너무 잘 안다. 그러다 보니 난 언제나 진지한 얼굴이다. 

      “방국장님은 재미빼고 다 갖춘 사람”
      재미 뿐만 아니라 없는게 많고 많지만 늘상 유머보다는 진지한 내 말과 태도에 대해 날 잘 아는 사람들이 날 평가하는 말이다.

      이번에도 마음은 좌불안석이었다.
      1차와 2차 입장권은 순조롭게 예매됐다.  문제는 준결승과 결승이었다. 예매를 맡은 여행사에서 연락이 왔다. 티켓 판매일이 됐는데 예매창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기다리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기다린다고 좌석이 생기지는 않았다. 출발 날짜는 다가오고, 문의는 이어지고, 나는 확답을 못 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그때는 종이 티켓이었다. 미리 구하지 못해도 현장에 가면 어떻게든 방법이 있었다. 경기장 입구에는 티켓을 한 움큼씩 쥔 사람들이 돌아다녔고, 가격을 묻고 흥정하며 필요한 표를 구하는 일도 여행의 한 장면이었다. 

      지금은 여권 정보까지 넣어야 하는 실명 예매다. 티켓을 예매하지 못하면 경기가 진행되는 코트 뿐만 아니라 경기장 자체를 들어가지 못한다. 예전처럼 현장에서 표 한 장 건네받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결국 공식 판매처에서 구하지 못한 입장권을 국내 예매 사이트를 통해 구매했다
      가격은 정가의 두 배. 티켓은 확보됐고, 정산표는 무너졌다. 

      속에서 한마디가 올라왔다.
      ‘우왕…나쁜 넘들. 아무리 장사지만 적당히 올려 받아야지…’

      그러나 어쩌랴. 표가 필요한 쪽은 우리였다.
      그제야 신청자들에게 출발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당초 10명 이상이 출발 인원이었다.  문의는 적지 않았지만, 최종적으로 함께하게 된 인원은 다섯 명이었다.

      안도의 한숨 뒤로 또 다른 생각이 따라왔다.
      ‘내년에도 결승 투어를 해야 하나.’

      아직 올해 결승도 보지 않았는데, 나는 벌써 내년의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2차 팀을 배웅하고 3차 팀을 맞기까지, 푸동공항에서 네 시간 정도가 비었다.

      공항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밀린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공항에서 여행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끝내는데, 나는 그 사이에서 늘 기사와 씨름한다. 틈 새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면 잠자는 시간이 줄어든다.

      그렇게 몇 편을 쓰고 나니 어느새 대구에서 오는 팀의 도착 시간이었다. 부부 두 쌍과 클럽 회원 한 분. 같은 성당에서 테니스를 치는 다섯 분이었다.

      “우리가 대구에서 온 촌 사람이라고 그런지 비행기가 우리를 아주 멀리 내려줬어요”
      도착하자 마자 농담이 나왔다. 티켓 문제로 과정이 조금은 원활하지 못했기에 1,2차에 비해 심적으로 약간 긴장하고 있었는데, 약간의 불편함을 유쾌하게 생각해주는 마음에 첫 마음이 놓인다.

      이들의 상하이행에는 서로 다른 계기가 있었다. 두바이에서 테니스 경기를 직접 본 기억이 너무 좋아 이번에는 상하이 마스터스 결승을 보고 싶었다는 김미숙 님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뜻밖에도 전덕성님은 챗GPT가 여행의 불씨를 지핀 경우다.

      “챗GPT랑 놀면서 버킷리스트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테니스 투어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아, 이런 것도 있구나’ 싶어서 신청했죠. 그래서 와이프랑 같이 왔습니다.”

      출발 과정은 달라도 목적지는 같았다. 화면으로 보던 테니스를 눈앞에서 만나는 것.

      다섯 분은 테니스뿐 아니라 상하이의 발전상에도 관심이 많았다. 와이탄의 야경 앞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강변의 건물과 불빛을 바라보는 눈길에는 놀라움과 부러움이 함께 담겼다.

      그러나 가장 강렬한 전율은 역시 경기장에서 찾아왔다.
      준결승 첫 경기를 앞두고 알렉산더 즈베레프가 센터코트에 등장하자, 전덕성 님이 말했다.

      “닭살이 돋고 몸에 전율이 돌았어요.”

      윔블던에 사는 조카 덕분에 대회가 열리지 않을 때 그곳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도 좋았지만, 관중으로 가득 찬 경기장에서 선수들의 입장을 직접 보는 느낌은 또 달랐다는 것이다.

      빈 무대를 보는 것과 막이 오르는 순간을 맞는 것의 차이였을까. 이 말을 듣는 순간, 출발 전까지의 마음고생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래. 이 장면을 보여드리려고 여기까지 온 거지.’

      준결승에서는 알레한드로 다비도비치 포키나가 즈베레프를 상대로 세트 스코어 2-1 역전승을 거뒀다. 이어 라파엘 호다르가 다닐 메드베데프를 2-0으로 꺾었다.

      호다르는 시종일관 침착했다. 반면 메드베데프는 2세트 후반으로 갈수록 평정심을 잃는 모습이었다. 한쪽은 차곡차곡 경기를 쌓았고, 다른 한쪽은 쌓아 놓은 것을 스스로 허무는 듯했다. 결승은 스페인 선수들의 대결로 정해졌다.

      준결승 두 경기를 보고 호텔에 돌아왔지만, 그대로 잠들기에는 마음이 너무 깨어 있었다. 호텔 옆 꼬치구이집으로 향했다. 맥주 한 잔을 앞에 놓자 낮에 본 장면들이 다시 살아났다. 코트에서는 선수들이 공을 주고받더니, 밤에는 우리가 감상을 주고받았다. 술을 많이 마시는 팀은 아니었다. 다만 즐거운 밤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하는 팀이었다. 지나온 이야기들, 테니스 이야기들, 그리고 셔플댄스까지…그렇게 그들의 밤은 시간을 잊게 하기에 충붆했다.

      결승전이 열리는 일요일 아침, 투어단에게 특별한 일정이 생겼다. 상하이의 이나치오 성당.
      기존 일정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와 신천지 거리를 걷는 대신 성당에서 종교활동에 우선순위를 뒀다. 상하이까지 와서도 주일 미사를 빠뜨리지 않는 분들이었다.

      가이드는 그 성당이 가톨릭 신자들에게 뜻깊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미사를 마치고 나온 다섯 분의 표정은 설명보다 더 분명했다.

      “성지에 왔네요.”
      달리는 차안에서 미사 본 이야기를 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만날 때 얼굴부터 달라지는구나.

      나라고 다를까. 테니스의 성지를 찾아갈 기회가 생긴다면 관광 일정 하나쯤은 기꺼이 바꿀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성당이, 누군가에게는 테니스 코트가 먼 길을 찾아올 이유가 된다.

      오전의 마음을 채웠으니 이제 배를 채울 차례였다. 변검 공연을 볼 수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우리 입맛에 딱이네”라는 말이 나올 만한 식사였다. 여행에서는 대단한 설명보다 이런 한마디가 식당 평가를 정확하게 끝내곤 한다. 

      그리고 치중 경기장으로 향했다.
      기온은 31도. 폰으로 짧은 영상 몇 편 찍는 그 순간에도 땀이 온 몸에 흘렀다. 

      결승 날의 경기장은 열기로 가득했다. 날씨만 뜨거운 게 아니었다. 커다란 하이네켄 부스에서는 흥겨운 노랫소리가 울렸고, 기념품 매장은 사람들로 빼곡했다. 테니스 체험 부스 앞에도 긴 줄이 늘어섰다. 축제의 마지막 날이었다. 누구나 조금 더 보고, 조금 더 즐기고, 무언가 하나라도 더 챙겨 가려는 듯했다. 

      오후 2시에 시작한 복식 결승이 끝나고, 4시 무렵 센터코트 지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맑은 하늘 아래 활짝 열려 있던 여덟 장의 꽃잎이 서서히 닫혔다. 결승전 입장 이벤트를 앞둔 준비였다.

      천장이 닫히자 공간의 표정이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 햇빛 아래 놓여 있던 경기장이 거대한 극장으로 바뀌는 느낌이었다. 

      이제 오늘의 주인공들만 등장하면 됐다. 그런데 우리 다섯 분은 아직 쇼핑 중이었다. 복식이 끝난 뒤 매장으로 향한 발걸음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코트에서는 결승 준비가 한창인데, 우리 팀은 쇼핑의 파이널 세트를 치르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결승을 앞두고 다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뜻밖의 발견이 이어졌다. 
      “에어컨 틀었어요? 의자에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것 같아요.”

      류미숙 님이었다. 기구를 사용하는 운동에는 영 소질이 없어 테니스도 1년 정도 배우다 그만두고, 지금은 셔플댄스를 배우고 있다는 분이다.

      “설마 그럴 리가요.”
      그런데 확인해 보니 정말이었다.

      좌석 아래쪽에 환풍구가 있었고, 그곳에서 시원한 바람이 올라왔다.
      “오, 진짜네요!”

      지금까지는 경기장의 웅장한 규모에 감탄했는데, 이번에는 발밑의 세심함에 감탄했다. 지붕만 올려다보다가 의자 아래에서 한 수 배웠다. 

      마침내 호다르와 포키나의 결승전이 시작됐다.
      첫 세트는 호다르가 ‘호다닥’ 가져갔다. 6-1.

      긴 랠리에서도, 공의 위력에서도, 움직임에서도 호다르가 경기를 주도했다. 포키나는 몇 차례 상대를 바라봤다. 내게는 그 눈빛이 이렇게 읽혔다.
      ‘쟤, 뭐지?’

      관중석에서 우리 팀의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포키나가 호다르한테 볶이네.”

      이름 하나로 결승전 해설이 완성됐다.
      그런데 너무 일방적인 승부도 관중에게는 고민이다. 결승을 보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끝나면 아쉽지 않은가.
      더구나 우리는 정가의 두 배를 주고 티켓을 샀다. 길게 보고 싶은 마음에 사심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 팀뿐 아니라 관중석 곳곳에서 포키나를 향한 응원이 커졌다. 호다르의 멋진 샷에도 환호가 나왔지만, 포키나가 위기를 벗어나면 함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조금만 더 버텨 달라는 마음들이 코트로 쏟아지는 듯했다.

      포키나가 버텼다.
      첫 세트처럼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승부는 타이브레이크까지 이어졌고, 결국 포키나가 2세트를 가져갔다.

      이제 마지막 세트.
      한 세트씩 나눠 가졌으니 관중들의 응원도 균형을 찾았다. 그러나 코트 위의 흐름은 달라져 있었다.

      앞서 침착하게 경기를 풀던 호다르에게서 범실이 늘었다. 첫 세트에는 무엇이든 들어갈 듯했던 공이 중요한 순간마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반대로 포키나는 기세를 끌어올렸다.

      결국 마지막에 웃은 선수는 포키나였다.
      첫 세트를 1-6으로 내주고도 뒤집은 승부. 준결승에 이어 결승에서도 역전승이었다.

      우리 투어단의 관전평은 이번에도 짧고 강했다.
      “호다르가 포키나를 볶다가, 나중에는 후달렸네.”

      선수들은 라켓으로 승부하고, 우리 팀은 이름으로 문장을 만들었다. 경기 내내 긴장했다가 웃었다가, 결승 한 경기를 아주 알뜰하게 즐겼다.

      이날 결승을 지켜본 특별한 관중도 있었다. 로저 페더러였다.
      엔드 체인지 도중 갑자기 함성이 터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전광판을 보니 페더러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코트에서는 두 스페인 선수가 결승을 치르고 있는데, 관중석의 한 사람이 잠시 경기장 전체의 시선을 가져갔다. 은퇴했어도 페더러는 페더러였다.

      금요일 밤 이벤트 경기에 나섰던 그는 결승전 관중석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옆자리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경기를 즐기다가, 시상식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 선수들에게 예의를 표했다. 

      자신의 시간이 지나간 코트에서, 오늘의 주인공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호주오픈 첫 취재 갔을때의 기억이 떠 올랐다. 경기가 끝나고 모두 일어 서길래 ‘모두들 서둘러 나가려고 하나?’ 라고 생각했는데, 코트에서 뛴 선수들의 인터뷰를 듣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일종의 문화충격이랄까.

      상하이에서의 마지막 저녁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며칠간 많은 것을 보고 먹었지만, 여행 막바지의 삼겹살과 소주는 유난히 반갑다.

      팀의 맏형인 서왕균 님이 말했다.
      “상하이 투어 일정이 다 좋았는데, 오늘 삼겹살에 소주가 정점이네.”

      결승전이 끝났는데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또 나왔다.
      첫날부터 호텔 옆 꼬치구이집에서 밤을 즐겼던 다섯 분은 마지막 식사에서도 즐거웠다. 잔이 많이 돌아서라기보다 이야기가 끊이지 않아서 좋은 자리였다.

      이제 대화는 상하이에서 대구로 건너갔다 .
      “대구에 함 놀러 오세요.”
      “네. 같이 모여서 운동도 한번 해야죠.”
      “첫째, 셋째 주 일요일에 오세요. 그때 우리 성당 회원들 운동하는 날이에요.”
      “네. 그렇게 할게요.”
      여행을 마치기도 전에 다음 만남의 요일까지 정해졌다.

      팀의 중심을 잡아 준 서왕균 님, 내년에 쌍둥이 손주를 맞는다는 이상열 님 부부, 유쾌한 말로 분위기 메이커인 전덕성 님 부부.

      이렇게 다섯 분과 함께한 3박 4일은 그렇게 끝나 갔다.
      미사로 마음을 채우고, 상하이의 풍경으로 눈을 채우고, 준결승과 결승으로 가슴을 채웠다. 그리고 밤마다 가벼운 술 한 잔과 이야기로 하루를 꽉 채웠다.

      나는 출발 전까지 티켓에 볶였다. 결승에서는 포키나가 볶이다 살아났고, 마지막에는 호다르가 흔들렸다.  그 모든 장면을 다섯 분과 함께 보며 웃었다.

      정산표의 마이너스는 물론 그대로였다. 즐거웠다고 숫자까지 역전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즈베레프의 등장에 전율이 돌았다는 말, 성당을 나서며 환해진 얼굴, 결승전에서 터진 웃음, 대구에 꼭 오라는 인사는 오래 남을 것 같다.

      내년에도 3차 투어를 할 것인가.
      출발 전의 나는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분들을 보내고 나니, 내 마음속에서 또 슬그머니 티켓 예매창이 열리고 있었다. 이제 내가 탄 비행기가 이륙하려 한다. 상하이의 11박 12일의 일정이 끝나는 시간이다. 

      상하이여…
      내년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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