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대회는 무엇일까. 윔블던, 롤랑가로스, 호주오픈, US오픈. 세계 정상에 도전하는 선수라면 그랜드슬램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질문을 국내 테니스의 현실로 좁히면 답은 달라진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와 체육회 소속으로 활동하는 실업 선수들에게 한 해의 핵심 목표는 전국체육대회다. 국제대회에서 세계랭킹을 높이는 것과 함께, 소속팀과 지역을 대표해 전국체전에서 성적을 내는 일이 중요하다.
실제 당진시의 공식 매체는 올해 테니스단의 국제대회 성과를 소개하면서 이를 전국체전 우승을 향한 청신호로 평가했다. 국내외 대회에서 경기력을 끌어올려 지난해 체전 단체전 3위의 아쉬움을 넘겠다는 목표였다. 국제무대에서 거둔 성과도 전국체전이라는 목표와 연결해 설명한 것이다.
올해 전국체전 일반부 출전 명단에서도 대회의 비중을 읽을 수 있다. 권순우, 홍성찬, 남지성, 박의성을 비롯해 장수정, 백다연, 이은혜, 박소현, 정보영 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지역 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국제무대에서 경쟁하던 선수들이 소속 지역의 유니폼을 입고 모이는 전국체전은 국내 정상급 선수들의 격전장이기도 하다.
왜 전국체전인가. 답은 국내 선수가 운동을 이어가는 기반에 있다.
국제투어에는 항공료와 숙박비, 훈련비 등 지속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상금과 개인 후원만으로 이 비용을 충당하기 어려운 선수에게 실업팀은 선수 생활을 이어갈 중요한 토대다. 소속팀이 있다는 것은 훈련과 대회 출전을 지속할 기반이 있다는 의미다.
그 팀을 운영하는 지역은 전국체전에서의 성과를 기대한다. 선수에게 국제대회가 자신의 이름으로 세계에 도전하는 무대라면, 전국체전은 자신을 지원해 온 지역의 이름을 걸고 뛰는 무대다.
문제는 전국체전 성적이 선수 육성과 팀 운영의 중심에 지나치게 놓일 경우, 한국 테니스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제무대에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지역이 성과를 확인하려는 시간은 다를 수 있다. 세계랭킹을 끌어올리려면 더 높은 수준의 상대를 만나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패배를 거듭하는 과정도 견뎌야 한다. 당장 우승이나 메달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전국체전은 정해진 시기에 결과를 내야 하는 대회다. 그 결과를 지나치게 중시하면 장기적인 성장보다 당장의 승리 가능성이 높은 선택에 무게가 실릴 수 있다. 유망주에게 국제대회 경험을 더 쌓게 하는 일보다 체전에 맞춰 전력을 완성하는 일이 우선될 가능성도 있다.
이것은 선수 개인의 의지로만 해결하기 어렵다. 선수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국제무대에 도전하고 싶어도, 현재의 선수 생활을 뒷받침하는 소속팀의 목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팀 역시 지역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만큼 지역 대표로서의 성과를 외면하기 어렵다.
결국 선수와 지도자에게 도전 정신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선택이 소속팀에서도 가치 있는 성과로 인정받는 구조가 필요하다.
선수 육성과 선수 확보의 차이도 돌아볼 대목이다. 지역 간 경쟁이 이미 기량을 갖춘 선수를 확보하는 데 치우치면, 새로운 선수를 길러내는 장기 투자의 중요성이 밀릴 수 있다. 유망주 한 명을 오랜 기간 키우는 일보다 당장 메달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를 영입하는 일이 더 효율적으로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체전 성적 중심의 운영이 안고 있는 구조적 위험이다. 한 지역의 순위가 올라가는 것과 한국 테니스 전체의 선수층이 두꺼워지는 것은 반드시 같은 일이 아니다. 지역 간 선수 이동만으로는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선수의 수가 늘어나지 않는다.
물론 전국체전 자체를 한국 테니스 부진의 원인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전국체전과 실업팀은 선수들이 운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탱해 온 기반이다. 국제무대에 도전하는 선수에게도 이 기반은 중요하다. 체전 출전이 선수별 국제대회 일정이나 랭킹 상승에 미친 영향 역시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따져봐야 한다.
다만 그 역할을 인정하는 것과 현재의 평가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국내 테니스의 목표가 전국체전 성적에 머문다면, 국제무대에서의 성장은 부차적인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변화의 출발점은 평가 기준을 넓히는 일이다. 전국체전 메달과 함께 국제랭킹의 상승, 상위 수준 대회 진출, 유망주의 성장 과정 등을 팀 운영의 성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선수의 국제대회 도전이 지역의 지원 명분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에서 길러낸 선수가 세계무대에 진출하는 일은 전국체전 메달과는 또 다른 지역 체육의 성과다. 그 가치를 함께 인정할 때 실업팀의 안정적인 기반과 선수 개인의 국제무대 도전이 같은 방향을 향할 수 있다.
우리나라 테니스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대회는 무엇인가.
국내 실업테니스의 현실에서 그 답의 중심에는 전국체전이 있다. 그러나 한국 테니스의 발전을 생각한다면 질문을 하나 더 던져야 한다.
전국체전이 선수의 최종 목표가 되어도 되는가.
전국체전은 선수의 성장을 확인하고 다음 도전을 뒷받침하는 무대가 되어야 한다. 선수와 팀을 평가하는 시야가 그 대회의 메달을 넘어설 때, 한국 테니스가 바라보는 목표도 더 높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