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상하이 마스터스 투어기 4> 조코비치는 왜? 해외 투어가 주는 본질적인 즐거움.
    • 빅3의 시대와 현재의 시대
    • 노박 조코비치가 후르카츠를 상대로 서브를 넣고 있다
      노박 조코비치가 후르카츠를 상대로 서브를 넣고 있다
      조코비치가 밀리기 시작하자, 관중들의 응원은 오히려 커졌다. 조금만 더 버텨주기를. 한 번만 더 그 긴 팔을 뻗어 공을 받아주기를. 그렇게 한 게임을 되찾고, 우리가 아는 조코비치로 돌아와 주기를.

      상하이 치중 경기장의 저녁, 나는 조금 낯선 장면을 보고 있었다. 한때 상대 선수의 이름으로 가득했던 경기장에서 홀로 승부를 뒤집어야 했던 남자. 그 남자를 향해, 이제 관중들이 마음을 모으고 있었다.

      조코비치는 언제부터 이렇게 응원받는 선수가 됐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그의 패배가 이토록 아쉬워졌을까.

      페더러는 2004년 만 22세에, 나달은 2008년 만 22세에, 조코비치는 2011년 만 24세에 처음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페더러 310주, 나달 209주, 조코비치 428주. 세 사람이 정상에 머문 시간을 합하면 947주, 약 18년 2개월이다. 누군가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의 시간을, 이 세 사람이 세계 테니스의 꼭대기에서 나눠 가진 셈이다. 

      우리가 그들을 ‘빅3’라고 부르는 이유다.
      여기에 앤디 머레이까지 가세했던 시절, 큰 대회의 대진표를 펼치면 먼저 이들의 이름을 찾았다. 누가 어느 쪽에 들어갔는지, 준결승에서 누가 만나는지, 이번 결승은 또 어떤 이야기를 남길 것인지.

      대진표를 보는 것만으로도 테니스가 재미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이름들도 시간 앞에서는 하나씩 코트를 떠났다.

      페더러는 2022년 만 41세에, 나달은 2024년 만 38세에 은퇴했다. 페더러 이전에도 오래 선수 생활을 이어간 선배들은 있었지만, 그가 마흔을 넘겨서도 세계의 관심 한가운데 서 있었다는 사실은 특별했다. 팬들은 그의 경기를 기다리며, 좋아하는 선수를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페더러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가 출전하는 경기에서는 상대가 누구든 응원의 무게가 페더러 쪽으로 현격하게 기울었다. 나달과 경기할 때도 그랬고, 조코비치를 만났을 때는 그 기울기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조코비치는 네트 건너편의 상대와 싸우면서, 때로는 관중의 마음과도 싸워야 했다.

      2019년 윔블던 결승 뒤 그가 남긴 말이 있다.
      “관중들이 ‘로저’를 외칠 때, 나는 ‘노박’이라고 바꿔 들었다.”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하고, 조금은 쓸쓸한 말이다. 내 편이 아닌 응원조차 내 힘으로 바꿔야 했던 사람. 조코비치는 그렇게 마음속에서 소리를 바꿔 듣고, 다시 공을 받아냈다.

      빅 3는 경기 방식도, 화를 다루는 방식도…

      물론 늘 의연했던 것은 아니다.
      페더러와 나달을 추격하던 젊은 조코비치에게서는 감정이 먼저 튀어나올 때가 많았다.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코치석을 향해 소리를 질렀고, 라켓을 코트에 내리쳐 부수는 것도 부지기수,  US오픈에서는 심판을 볼로 맞춰 실격패 당하기도 했다. 꼭 이기고 싶은 마음이 표정과 몸짓에 고스란히 드러난게 조코비치였다.
      노박 조코비치의 명성을 스스로 갉아먹는 승질머리는
      명성을 스스로 갉아먹는 조코비치의 성향
      다만 그가 ‘10여 년 동안 만년 3위’였던 것은 아니다. 두 거인의 뒤를 쫓던 시기를 지나, 2011년 스물네 살에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그때부터 그는 페더러와 나달의 시대를 함께 만들어가는 주인공이 됐다. 

      페더러 역시 젊은 시절에는 감정을 다스리는 데 애를 먹었다. 반면 나달은 라켓을 부수지 않는 선수로 유명했다. CBS 인터뷰에서도 가족이 그런 행동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 라켓을 부순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세 사람은 경기하는 방식도, 화를 다루는 방식도 달랐다.
      우리는 그 다름까지 오래 지켜봤다. 어느새 샷 하나만 봐도 선수를 알아보고, 표정 하나만 봐도 오늘의 상태를 짐작하는 사이가 됐다.

      그래서일 것이다.
      빅3 가운데 이제 홀로 남아 투어를 뛰는 조코비치를 보는 마음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은.

      아시아 4번째 세계 6번째로 높은 동방명주 앞에서
      아시아 4번째, 세계 6번째로 높은 동방명주 앞에서

      상하이 마스터스 투어 2일차…
      오전 일정은 동방명주와 그 안의 상하이 도시역사 발전전시관이었다.
      높이 468m의 동방명주에 올라서니 황푸강과 와이탄, 빌딩들이 펼쳐졌다. 사진으로 보던 상하이를 직접 내려다보는 순간이다. 전망대에서는 모두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러다 투명한 유리바닥 앞에 이르면 걸음이 조금 달라진다. 성큼 올라서는 사람, 발끝부터 조심스럽게 대보는 사람, 괜찮다면서도 아래는 오래 보지 못하는 사람. 코트에서는 강하게 치는 분도 이런 곳에서는 꽤 신중해진다.

      전망대에서 지금의 상하이를 봤다면, 도시역사 발전전시관에서는 옛 상하이를 만났다. 옛 거리와 생활 모습을 따라 걷다 보면, 조금 전 내려다본 거대한 도시에도 소박한 일상이 켜켜이 쌓여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점심 시간에는 우리의 입맛에 맞춰진 현지 음식과 고량주 칭따오 맥주가 흥을 돋웠다
      점심 시간에는 우리의 입맛에도 그리 거부감이 없는  현지 음식과 고량주, 칭따오 맥주가 흥을 돋웠다
      구경을 마치고 이른 점심을 먹는다. 식탁에는 음식과 함께 이야기가 놓였다. 어제보다 웃음이 많아졌고, 옆자리뿐 아니라 맞은편 사람에게도 말을 건넨다. 그렇게 식사가 길어질수록, 처음 만난 사이라는 사실은 희미해진다.

      내가 단체 투어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선수를 응원하고, 같은 경기에서 탄성을 지르고, 저녁에 그 장면을 다시 이야기하다 보면 금세 가까워진다. 여행이 끝난 뒤에는 전국에 테니스 친구가 생긴다. 다른 지역에 갈 일이 있을 때 “시간 되면 공 한번 칩시다”라고 연락할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함께 본 경기가, 다음 만남의 약속이 된다.

      관광팀에 합류한 대구고 22회 동창생들
      관광팀에 합류한 대구고 22회 동창생들, 아내와 함께 동반해 절충의 묘를 찾았다

      이날부터 1차 더 테니스 투어단은 경기 관전팀과 관광팀으로 나눠 움직였다. 
      관광팀에는 대구고 22회 동창생 부부들이 있었다. 매달 조금씩 여행 경비를 모아 해마다 부부동반 여행을 다니는 분들이다. 올해의 목적지는 상하이 마스터스.

      남편들은 테니스로 모인 사이였지만, 아내들은 한 분을 제외하고 테니스를 치지 않았다. 그러니 하루 종일 경기장에 함께 앉아 있는 일정은 모두에게 반가운 선택이 아닐 수 있었다. 낮에는 아내들을 위한 관광, 저녁에는 남편들을 위해 함께 경기 관전. 오랜 세월 부부로 살아온 분들답게 여행의 균형도 잘 잡았다.

      여기서 광고 한마디.
      더 테니스 투어는 이런 조율을 꽤 중요하게 생각한다. 테니스를 실컷 보고 싶은 분도, 관광을 충분히 즐기고 싶은 분도, 돌아갈 때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했다”고 느끼셨으면 좋겠다. 모두가 즐거워야 다음 여행도 함께 갈 수 있으니까.^^

      낮 경기는 12시에 시작했다. 관전팀은 먼저 식탁에서 일어났고, 관광팀은 조금 더 느긋하게 식사를 이어갔다.

      관광팀의 오후 목적지는 예원과 주변 옛거리였다.

      예원에서는 연못과 기암괴석, 누각과 구불구불한 회랑이 걸음을 붙잡는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풍경이 조금씩 달라져, 빨리 걸으면 아까운 곳이다. 옛거리에는 음식점과 찻집, 기념품 가게가 이어진다. 정원에서 눈을 즐겁게 했다면, 거리에서는 입과 손이 바빠질 차례다.

      같은 상하이에서 누군가는 정원을 걷고, 누군가는 테니스 코트를 찾아갔다.

      관전팀은 12시가 조금 넘은 무렵 경기장에 도착했다. 첫날에는 안면인식 등록 때문에 입장에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둘째 날에는 한결 익숙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이날 낮 일정에는 단식 14경기와 복식 4경기, 모두 18경기가 예정돼 있었다. 즈베레프, 벤 셸튼, 드 미노, 티아포, 베레티니, 루블레프 등 눈길을 끄는 이름들이 곳곳에 있었다.
      즈베레프가 우이빙과의 경기 중 넘어져 발목을 만지고 있다 순간 프랑스오픈의 악몽이 되살아 나는 듯 했다
      즈베레프가 우이빙과의 경기 중 넘어져 발목을 만지고 있다. 순간 2022년 프랑스오픈의 악몽이 되살아 나는 듯 했다
      이럴 때 가장 어려운 일은 한 경기를 고르는 것이다. 지금 보고 있는 경기도 놓치기 싫고, 옆 코트 선수도 궁금하다. 좋은 대진이 겹치면 몸이 두 개였으면 싶다. 경기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코트 사이를 오가고, 우연히 마주친 일행에게 어느 경기가 재미있는지 묻는다.

      초반 라운드 관전은 이렇게 부지런해야 한다.
      그리고 저녁이 가까워지자, 흩어져 있던 발걸음이 센터코트로 모이기 시작했다.

      조코비치가 나올 시간이었다.

      낮에는 이름난 선수들이 경기해도 센터코트가 절반 정도 찬 듯했는데, 저녁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경기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입장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보기에 1만 5천석 가운데 80% 가까이가 관중으로 채워졌다. 빈자리가 줄어드는 속도만 봐도 사람들이 누구를 기다리는지 알 수 있었다.
      나이트 경기가 시작되는 저녁 6시가 가까워지자 관중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이트 경기가 시작되는 저녁 6시가 가까워지자 관중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오후 관광팀도 들어왔다. 상하이의 옛 정원을 걸었던 분들과 세계적인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본 분들이, 이제 같은 코트를 바라보며 앉았다. 우리의 둘째 날이 다시 하나로 모이는 시간이었다.

      조코비치의 상대는 폴란드의 후베르트 후르카츠였다. 196cm의 장신에서 꽂히는 서브가 위력적인 선수다. 

      공이 날아오는 속도도 빨랐지만, 조코비치가 반응할 시간을 좀처럼 얻지 못한다는 것이 더 크게 느껴졌다. 경기가 시작하고 첫 세트 4-4. 아직 승부는 팽팽했다. 그러나 조코비치는 두 게임을 연달아 내줬고, 첫 세트는 4-6으로 끝났다. 조코비치의 경기 전례로 보면 승부는 반대였어야 했다. 

      우리는 기다렸다.

      조코비치는 늘 이렇게 끝날 것 같다가도 돌아오는 선수였으니까. 상대가 승리를 바라보기 시작할 무렵,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장면을 얼마나 많이 봐 왔던가. 4-4또는, 5-4에서 상대의 마지막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 시키고 본인이 세트를 가져와야 조코비치의 본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몸이 무거워 보였다.

      긴 랠리가 끝나면 허리를 굽혀 잠시 숨을 골랐다. 평소라면 따라붙었을 듯한 공에도 발이 늦었다. 코트 구석구석을 지워버리듯 움직이던 그의 수비가, 이날은 그렇게 넓게 펼쳐지지 않았다.

      두 번째 세트에서도 서브 게임을 내주며 1-3, 이어 1-4로 밀렸다.
      관중석의 80정도가 찼고 그 대부분이 조코비치를 응원했다
      관중석의 80%정도가 찼고, 그 대부분이 조코비치를 응원했다
      그때 관중의 응원이 커졌다.
      잘해서 터지는 환호와는 조금 달랐다. 밀리고 있는 선수를 붙잡아 주려는 응원이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목소리에 실렸다.

      우리 투어팀 역시 그랬다.
      단 한 게임만 되찾으면 달라질 것 같았다. 긴 랠리 하나를 이겨내면, 주먹을 불끈 쥐는 장면 하나만 나오면, 우리가 기다리는 반격이 시작될 것 같았다. 이왕이면 후르카츠의 경기보다 조코비치의 경기를 조금이라도 더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르카츠는 흔들리지 않았다.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서브에는 자신감이 붙었고, 조코비치는 끝내 흐름을 되돌리지 못했다. 

      4-6, 3-6. 둘은 네트 앞에서 서로 껴안으며 어깨를 토닥였고, 후르카츠가 3라운드 진출을 확정하며 손을 들어 관중들에게 답했고, 조코비치는 장비를 챙겨 코트를 벗어났다. 

      조코비치가 경기장을 빠져 나가고 있다
      조코비치가 경기에서 패한 후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경기장을 빠져 나가고 있다 

      조코비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빠른 코트에 적응하는 어려움과 베이징 대회 뒤의 피로’를 패인으로 짚었다.

      이날 내 눈에 오래 남은 것은 패배의 스코어보다, 랠리가 끝난 뒤 잠시 몸을 굽히던 모습, 엔드 체인지시 시간을 다 쓰지 않고 상대편보다 먼저 베이스라인으로 나와서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젊은 시절처럼 코치석을 향해 거칠게 감정을 쏟아내는 모습도, 기어이 승부를 뒤집겠다는 기세도 내가 지켜본 이날 경기에서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날.
      그런 날의 조코비치를, 우리는 보고 있었다.

      한때는 그가 너무 강해서 ‘이제 그만 우승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가 힘겨워하는 모습이 마음에 걸린다. 페더러와 나달이 떠난 뒤에도 여전히 코트에 서 있는 그를,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어진다. 조코비치를 응원하는 마음에는 그가 쌓은 기록도 있겠지만, 그와 함께 테니스를 봐온 우리의 시간도 담겨 있으니까

      야간 경기 관람을 모두 마치고
      야간 경기 관람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투어팀에 말했다.

      “여러분은 행운아들입니다.”

      “왜요?”

      “빅3 중 한 명인 조코비치 경기를 봤잖아요.  이제 뒤에 오시는 분들은 이번 대회에서 조코비치를 못 봅니다. 올해 상하이에 오시는 더 테니스 투어팀을 비롯 모든 투어팀 중 여러분만 조코비치 경기를 봤어요”

      좋아하는 선수의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티켓만으로 보장되는 일이 아니다. 선수가 출전해야 하고, 내가 보는 날까지 이겨 올라와야 한다. 몸 상태도 괜찮아야 한다. 해외 관전에는 이런 작은 조건들이 모두 맞아야 한다.

      지난해 우리가 그 아쉬움을 겪었다.

      16강과 8강을 보러 상하이에 왔지만, 보고 싶었던 톱 플레이어들이 앞선 라운드에서 탈락했다. 대진표 속 이름을 기다리며 준비한 여행인데, 정작 도착했을 때는 그 이름들이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16강과 8강 관전은 분명 매력적이다. 강자끼리 만날 가능성이 높고, 수요일 출발해 토요일 돌아오는 일정은 직장인들에게도 비교적 부담이 덜하다.

      다만 우리가 보고 싶은 선수가 반드시 기다려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많은 선수를 직접 보고 싶은 분들에게는 초반 라운드가 좋은 선택이 된다. 오늘 우리가 조코비치를 만난 것처럼.

      당연 지난해 여행도 즐거웠다. 경기장의 아쉬움은 식탁에서 나눈 이야기와 상하이의 풍경 속에서 조금씩 옅어졌다. 함께 다녀온 분들과는 지금도 해마다 만나 안부를 묻고 친목을 이어간다. 결국 투어의 즐거움은 어찌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본인 스스로 어떻게 받아 들이고, 얼마큼 즐겁게 즐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리라.

      어느 선수가 이겼는지는 시간이 지나며 가물가물해져도, 누구와 함께 웃었는지는 남는다.

      그것이 해외 테니스 투어가 주는 본질적인 즐거움이다.
      둘째 날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아침에는 동방명주에서 상하이를 내려다봤고, 오후에는 각자 원하는 곳으로 흩어졌다. 저녁에는 다시 모여 조코비치를 응원했다.

      첫날의 낯선 얼굴들은 어느새 익숙해졌다. 누가 어떤 선수를 좋아하는지, 누가 사진을 잘 찍는지, 누가 식사 자리에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지 조금씩 알게 됐다. 발은 피곤했지만, 잠들기에는 하루가 아까웠다.

      우리는 조코비치의 승리를 보지 못했다. 그래도 그의 경기를 봤다. 서브를 기다리는 자세와 공을 쫓는 발걸음, 긴 랠리 끝에 숨을 고르는 모습까지 같은 공간에서 지켜봤다. 화면을 통해 수없이 만났던 선수가 그날 저녁에는 우리 앞에 있었다.

      언젠가 조코비치마저 코트를 떠나면, 이날이 다시 생각날 것 같다.
      “상하이에서 조코비치를 직접 봤었지“라고 

      우리는 그의 마지막 경기가 언제일지 모른다. 다음 기회가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볼 수 있는 한 경기가 예전보다 소중해졌다.

      상하이의 둘째 날은 그렇게 우리의 기억속에 담겼다.

      글= 상하이 방극종 기자, 사진=2026 상하이 투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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