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의 시간이 멈춰서는 안 됩니다”
    • 안동시테니스협회 손영자 회장의 허심탄회 직설 인터뷰
    • 비가 내린 안동 실내코트. 

      습기 찬 공기 속에서도 아이들의 라켓 소리가 맑게 울린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 안동시테니스협회 손영자 회장은 오늘도 한결같은 눈빛으로 코트를 바라본다.

      “아이들의 인생이 걸린 일입니다. 단 한 명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죠.”

      손 회장은 지난 7년간 ATF(아시아테니스연맹) 안동 국제주니어대회를 이끌며 국내 주니어 테니스의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왔다.


      그의 말은 단호하고, 동시에 따뜻했다. “동호인들은 누가 회장이 돼도 상관없지만, 엘리트 선수들의 미래는 회장의 방향성에 달려 있어요.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안동시 테니스협회 손영자 회장
      안동시 테니스협회 손영자 회장

      “안동은 전국에서 가장 방향성 있는 도시입니다”

      손 회장은 안동을 ‘테니스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 달려왔다.
      “안동만큼 선수 육성의 뿌리를 단단히 다진 도시는 없습니다. 초등에서 실업까지 모든 단계가 다 있죠. 잘하는 아이들이 다른 도시로 빠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 안동에서 와일드카드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나갔던 아이들이 다시 돌아왔어요.”

      그는 ‘지역 선수 지키기’를 협회의 첫 번째 목표로 꼽는다.
      “우리는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우리 아이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안동을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해요.”


      “시설이 도시를 살립니다. 건물이 아니라 경기장이 경제를 움직이죠”

      안동시민운동장 테니스 코트 실내 2면 실외 10면을 보유하고 있다 실내 4면 실외 10면이 설계에 들어가 있다
      안동시민운동장 테니스코트, 실내2면, 실외10면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실내4면, 실외10면이 설계단계에 들어가 있다


      손 회장은 대회와 함께 시설 확충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 왔다.
      “안동은 교육도시로 유명하지만, 체육 인프라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경북 교육청 덕에 학교 테니스코트가 돔 구장으로 지어져 좋아졌지만, 그럼에도 테니스 코트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안동시가 건물 짓는 데는 투자를 잘하지만, 스포츠 시설이야말로 지역 경제를 살리는 기반입니다.”

      그는 양구군의 사례를 언급하며 “안동도 그렇게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시합을 하면 부모들이 함께 오고, 숙박하고, 먹고, 머물죠. 그게 지역 경제입니다. 시가 실내 4면, 실외 10면 규모의 코트를 약속했어요. 빠르면 2년, 늦어도 3년 안엔 완공될 겁니다.”



       “보영이 엄마가 아니라, 지도자이자 선배로서”

      손 회장의 딸인 정보영 선수가 W35 호주 다윈 오픈 챔피언이 됐다
      손 회장의 딸인 정보영 선수(안동시청)가 지난 12일 W35 호주다윈오픈에서 단식 타이틀을 확보했다


      손 회장은 본인이 선수 출신이자, 두 딸(정영원, 정보영)을 선수로 키운 어머니이기도 하다.
      “두 딸을 선수로 키워보니, 외국 시합 나가는데 부모 부담이 너무 컸어요. 외국 안 나가도 포인트를 딸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시를 몇 년에 결쳐 설득했고, 안동에서 국제대회를 시작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늘 고단했다.
      “보영이가 고3일 때 대회를 만들었는데, 정작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어요. 사람들은 제 딸이 혜택을 받았다고 오해하지만, 실상은 반대였죠.”

      그는 ‘시합장 따라다니는 부모가 되지 말라’고 단호히 말했다.
      “지도자를 믿고, 아이가 필요할 때 필요한 지원을 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입니다. 시합장 따라다니며 감정적으로 휘둘리면 결국 아이도 흔들립니다.”

      그의 교육 철학은 명확하다.
      “테니스는 공만 치는 종목이 아닙니다. 사회성, 인성, 인간관계를 배우는 종목이에요. 부모가 조급하면 아이는 무너집니다. 성적보다 사람을 키우는 게 먼저입니다.”



      “협회 대행 시절, 아이들의 시간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ATF 안동 14세 국제주니어대회 여자 단식 결승전
      ATF 안동 14세 국제주니어대회 여자 단식 결승전 오프닝 기념 사진


      손 회장은 한때 대한테니스협회 직무 대행으로 테니스계의 혼란기를 직접 겪었고 혼란을 마무리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아이들의 시간이 멈추면 안 된다는 생각 하나로 맡았죠.”

      하지만 현실은 전쟁터 같았다.
      “이사회에서는 인신공격이 난무했어요. 그래도 맞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였으니까요. 결재를 마무리하고 직무 대행 사퇴하기 하루 전에 대한테니스협회장 인준이 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신이 도왔던 순간이에요.”

      그는 고백한다. 

      어른들의 싸움 속에서도 누군가는 버텨야 한다고. 크게 자라야 할 아이들이 흔들리지 않게.


      “이제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움직일 때입니다”

      ATF 안동14세 국제주니어대회 남녀단식 결승전 시상식
      ATF 안동14세 국제주니어대회 남녀단식 결승전 시상식
      오랜 세월 협회 일을 이어온 손 회장은 이제 다음 세대를 위해 목소리를 낸다.
      “외국에 가면 철저하게 자국 선수 위주의 게임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외국 선수들에겐 너무 후해요. 반대로 우리 선수들은 불이익을 받을 때도 있
      습니다. 편파 판정을 하라는 게 아니라, 자국 선수에게 자긍심을 심어줘야 합니다.

      그는 이어 “선수들이 있어야 협회가 있고, 회장이 있다”고 말했다.
      “잘하는 아이들뿐 아니라 지금 부족한 아이들도 함께 지원해야 합니다. 그게 어른들의 역할이죠.”


      “테니스는 인생을 가르칩니다”

      매일 행운권 추첨을 통해 참가 선수들과 부모들의 기분을 붇돋웠다
      매일 30여점의 행운권 추첨을 통해 참가 선수들과 부모들의 기분을 붇돋웠다


      손 회장은 자녀와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가장 인간적이었다. 며칠 전 딸(정보영)의 우승 소식에 감정이 어떤가를 물었더니 "잘해도 못해도 감정의 기복이 별로 없다. 중요한 건 성실함이다. 성실하면 언젠가 분명 기회가 온다고 딸들에게 말합니다"라고 답하다. 


      그리고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것도 좋지만, 저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질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은 위계가 있어야 돌아갑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존중을 배웁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부드럽게 웃었다.
      “이제는 딸들이 다 컸어요. 제가 너무 꾸중만 했던 것 같아 걱정도 됐는데, 지금은 ‘엄마가 없었으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 거다’고 말해줍니다. 그 말 한마디면 충분해요.”


      “테니스는, 결국 사람입니다”

      비가 그치자 몸이 근질근질 했던 선수들이 채 마르지도 않은 코트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있다
      비가 그치자 몸이 근질근질 했던 선수들이 채 마르지도 않은 코트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있다


      비 오는 날에도 대회를 멈추지 않는 손영자 회장.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비 오는 날 시합 준비하는 걸 보면 늘 미안해요. 하지만 이런 대회를 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아줬으면 합니다. 아이들이 뛰는 코트, 그 한 장면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있거든요.”

      그는 오늘도 말한다.
      “아이들이 코트에서 뛰는 것을 보는 그 자체가 제겐 행복입니다. 저는 그거면 충분합니다.”


      에필로그 
      이 인터뷰는 비가 한창 내리던 지난 14일(화)날 진행됐다. 손 회장의 말은 거침이 없었고, 자신감이 넘쳤다. 약 30여분의 인터뷰 시간의 대부분은 아이들과 관계된 말이었다. 그만큼 머리속에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가득 들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옳은 말은 꼭 해야만 하다"는 손 회장은 ATF 안동14세 국제주니어대회가 모두 끝난 후 마지막 한 마디로 대회를 정리했다. 

      "아이도, 어른도 교육이 중요합니다. 이런 대회도 결국은 교육입니다. 국내외 선수들이 출전하는 대회를 통해 시합도, 말도, 행동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서로를 보고 배우는 거죠. 막무가내 설쳐 대는 부모 밑에 좋은 선수 못 봤어요. 좋은 생각을 가진 부모와 코치에게서 좋은 선수가 나옵니다."

      14세 이하의 선수들이 뛰었던 안동시민 테니스장은 이제  좀 더 성장한 주니어들이 뛸 무대인 ITF 국제 주니어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대회는 오는 일요일(26일)부터 11월 2일(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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