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알카라스가 너무 멀리 물러섰고, 벤 셸턴은 그 공간을 놓치지 않았다.
알카라스는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아서 애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US오픈 남자 단식 8강에서 벤 셸턴에게 7-6(5), 1-6, 3-6, 6-1, 6-7(7)로 패했다.
경기 시간은 4시간 28분. 현지시간 오전 3시33분에 끝난 US오픈 역사상 가장 늦게 종료된 경기였다. 디펜딩 챔피언 알카라스의 그랜드슬램 18연승도 여기서 멈췄다.
스코어만 보면 마지막 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결정된 종이 한 장 차이의 승부다. 그러나 경기 내용에는 알카라스가 패할 수밖에 없었던 몇 가지 분명한 원인이 있었다.
첫 번째는 지나치게 뒤로 물러선 리턴 위치였다.
전 영국 1위 그렉 루세드스키는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알카라스가 셸턴의 서브를 의식해 베이스라인 뒤쪽에 너무 멀리 자리 잡았다고 지적했다.
“뒤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셸턴에게 많은 시간을 주고, 그가 공을 칠 공간까지 허용하게 된다. 그러면 셸턴은 서브 후 네트로 들어가거나 첫 번째 샷부터 공격할 수 있는 수많은 선택지를 갖게 된다.”
알카라스가 리턴에 성공하더라도 공이 셸턴에게 도달할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셸턴은 그 시간을 이용해 다음 공격을 준비했고, 짧게 돌아온 리턴에는 곧바로 코트 안으로 들어가 주도권을 잡았다.
루세드스키는 알카라스가 야닉 시너처럼 베이스라인에 조금 더 가까이 서서 공을 일찍 처리했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시너는 셸턴과의 상대 전적에서 9승1패로 앞서 있다. 뛰어난 반사 신경을 바탕으로 서브의 속도를 그대로 이용해 빠르게 리턴하는 것이 셸턴의 공격 시간을 빼앗는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두 번째 원인은 알카라스의 과도한 범실이었다.
알카라스는 이날 53개의 언포스드 에러를 기록했다. 셸턴의 35개보다 18개나 많았다. 특히 2세트와 3세트에서는 평소라면 실수하지 않을 평범한 스트로크에서도 오류가 이어졌다.
1세트를 타이브레이크 끝에 잡은 알카라스는 2세트 첫 번째 서브게임에서 네 차례의 브레이크 포인트를 모두 막았다. 그러나 이후 급격히 흔들리며 셸턴에게 9게임을 연속으로 내줬다. 2세트를 1-6으로 잃은 데 이어 3세트에서도 먼저 브레이크를 허용하면서 경기의 주도권을 빼앗겼다.
알카라스의 두 번째 서브도 셸턴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됐다. 셸턴은 첫 두 세트에서 알카라스의 두 번째 서브를 상대로 32포인트 가운데 18포인트를 따냈다. 반면 알카라스의 두 번째 서브 득점률은 이 시점까지 44%에 머물렀다.
세 번째는 체력 저하였다.
알카라스는 3세트가 끝난 뒤 신체적으로 크게 지쳤다고 인정했다. 경기 도중 수건에 구토하는 듯한 모습도 포착됐다. 그럼에도 4세트를 6-1로 가져오며 승부를 마지막 세트로 끌고 갔지만, 체력 저하는 집중력과 샷의 정교함에 영향을 미쳤다.
마지막 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도 결정적인 순간 포핸드 범실이 나왔다. 셸턴은 이를 놓치지 않고 시속 235㎞에 이르는 강서브로 승부를 끝냈다.
하지만 이번 결과를 단순히 알카라스의 부진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셸턴이 만든 압박이 알카라스의 실수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셸턴은 최고 시속 240㎞에 육박하는 서브를 앞세워 54개의 리턴 불가 서브를 기록했다. 강서브에만 의존하지 않고 네트 플레이와 베이스라인 공격을 적극적으로 섞었다. 짧은 랠리에서 우위를 점했으며, 중요한 순간에는 알카라스와의 긴 랠리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루세드스키는 “알카라스를 상대해 베이스라인에만 머물면 거의 항상 패하게 된다”며 셸턴의 공격적인 선택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알카라스가 이길 만큼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셸턴은 예상을 뒤엎을 자격이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알카라스의 패인은 하나가 아니었다. 뒤로 물러선 리턴 위치가 셸턴에게 공격 시간을 줬고, 그 압박 속에서 범실이 늘어났다. 여기에 심야까지 이어진 장기전의 체력 부담이 겹쳤다.
알카라스가 수동적으로 기다린 순간, 셸턴은 앞으로 들어갔다. 두 선수의 위치 차이가 마지막 타이브레이크 3포인트의 차이로 이어졌다. 이번 8강전은 강한 서브를 상대할 때 무조건 뒤로 물러나는 것이 해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