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저 페더러, 그랜드슬램 결승에 남은 ‘잔인한 숫자’
    • 로저 페더러는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 20개의 그랜드슬램 타이틀, 시대를 초월한 경기력, 그리고 한 세대를 지배한 아이콘. 그러나 숫자는 때때로 전설에게도 냉정하다.
      페더러의 커리어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그가 서 있던 시대의 경쟁 강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기록 하나가 눈에 띈다. 그는 통산 31차례 그랜드슬램 결승에 진출했지만, ‘결승 당시 세계랭킹 1위 선수’를 상대로는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31번의 결승, 그리고 승리하지 못한 단 하나의 조건

      이 통계는 얼핏 보면 스위스 챔피언의 위상과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페더러가 그랜드슬램 결승에서 마주했던 세계 1위는 단순한 ‘랭킹 1위’가 아니었다.

      그 중심에는 두 이름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라파엘 나달과 노박 조코비치다.

      라파엘 나달은 두 차례, 세계 1위로 그랜드슬램 결승에 올라 페더러의 길을 막았다. 2009년 호주오픈 결승, 그리고 2011년 롤랑가로스 결승. 특히 클레이코트의 절대자로 군림하던 나달은 페더러에게 있어 가장 넘기 힘든 산이었다.

      노박 조코비치는 보다 잔인한 기억을 남겼다. 2015년 윔블던, 2019년 윔블던, 그리고 2015년 US오픈 결승. 세 번의 결승 모두에서 조코비치는 세계 1위였고, 세 번 모두 페더러는 우승 트로피에 손을 대지 못했다. 특히 2019년 윔블던 결승은 매치 포인트를 잡고도 놓친, 페더러 커리어에서 가장 아픈 장면으로 남아 있다.

      약점인가, 시대의 증거인가

      이 기록을 두고 ‘약점’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단순하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는 페더러가 얼마나 치열한 시대를 살았는지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페더러가 결승에서 만난 세계 1위는 대부분 나달과 조코비치였다. 테니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라이벌 관계 속에서, 정상의 자리에서 서로를 가로막던 존재들이다. 만약 이 둘이 아니었다면, 이 숫자는 전혀 다른 의미로 기록됐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31번의 결승 진출, 20번의 우승.
      그리고 세계 1위를 상대로는 우승이 없었다는 사실.

      이 ‘잔인한 숫자’는 로저 페더러의 위대함을 깎아내리기보다는, 그가 얼마나 강한 경쟁자들과 같은 시대를 공유했는지를 말해준다.

      전설은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페더러의 커리어에 남은 이 숫자는, 나달과 조코비치가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던 테니스 역사상 가장 치열한 황금시대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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