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8~9일, 강원도 강릉에서 ‘전국 최강 클럽 대항전’인 강릉 챔피언스 테니스대회가 처음 개최됐다. 전국 16개 클럽이 초청 돼 최종 14개 클럽 팀이 모여 1박 2일 동안 열전을 펼친 가운데, 서울의 어벤져스 팀이 초대 우승을 차지했다.
비가 내린 악조건 속에서도 대회는 큰 무리 없이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 대회의 핵심은 우승 팀도, 기록도 아니었다. 최기순 대회장(대한테니스협회 부회장)이 밝힌 “진짜 목적”은 바로 ATP500 대회 유치, 그리고 활용 정지 상태인 동계올림픽 경기장을 테니스 코트로의 전환 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목표지만, 그의 설명을 듣고 나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더 테니스는 최기순 대회장을 만나 왜 강릉이 ATP500을 꿈꾸는지, 그 배경과 전략을 직접 들어봤다.
■ 인터뷰 | 강릉챔피언스 테니스대회 최기순 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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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챔피언스대회 최기순 대회장(KTA부회장)이 동계올림픽 시설물 테니스 코트 전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 대회장님, 먼저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대한테니스협회 부회장 겸 공모사업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기순입니다. 이전에는 커피 사업을 했고, 지금은 우리나라 테니스가 발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 이번 대회의 가장 큰 의미가 ‘ATP500 유치 기원’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유가?
“강릉에는 2018 동계올림픽 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피겨와 쇼트트랙이 열렸던 아이스 아레나(8,000석), 하키 경기를 치렀던 하키 경기장(12,000석), 그리고 스피드스케이트장은 국제 기준으로 최대 12~16면의 테니스 코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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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부터 아이스 아레나, 스피드 스케이트장, 하키 경기장 |
하지만 8년 가까이 이 좋은 시설들이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습니다. 1년 유지비만 해도 수 억이 넘게 드는 이 올림픽 유산을 방치가 아닌 테니스 코트로 재활용해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했습니다.”
― 그런데 ATP500은 한국 테니스 현실에 비해 너무 큰 목표라는 말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챌린저나 250부터 시작해 단계를 밟는 것이 맞다고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동계올림픽 경기장을 테니스로 전환하려면 큰 이벤트, 즉 ‘단계별이 아닌 대형 국제대회’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ATP500의 조건을 보면
이런 인프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뭅니다. ‘있으니까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갖춘 것을 활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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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E&C 건축사 사무소 한광호 대표가 전환 코트 설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 강원도와 강릉시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요?
“2019년에 한 차례 테니스 코트로의 전환을 제안했지만 그때는 강원도와 강릉시 모두 조심스러운 입장이었습니다. 또 2024 청소년 동계올림픽이 있어 시설을 유지해야 했죠.
그 행사가 끝난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강원도도, 강릉시도 이제 본격적으로 시설 활용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는 도와 시에 민간 TF를 구성해 ATP500 유치를 추진하자고 요청한 상태이고,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이번 강릉챔피언스 대회를 기획한 이유도 이런 과정의 일환인가요?
“맞습니다. ATP500이라는 목표를 말로만 외칠 수는 없습니다. 비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 인프라, 국제대회를 치를 수 있는 운영 능력, 그리고 테니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왜 강릉이어야 하는지’ 체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대회는 그런 시작점이었습니다.
‘좋은 아마추어 대회 하나가 도시의 미래를 바꾼다’는 생각으로 기획했죠.”
― 올림픽 유산의 코트 전환 시점은 어느 정도로 보고 계신지?
“당연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시설은 실내화가 된 상태여서 확정만 된다면 실제 공사 기간은 길지 않습니다. 관건은 강원도와 강릉시의 결단입니다.”
■ 강릉이 꿈꾸는 미래, 한국 테니스의 돌파구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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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시협회장 최성두, 강원도협회장 김운수,전 강원도협회장 이행용, 전 강릉지청장 신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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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가 열린 날 강릉에는 비가 내렸다. 오후 12시 예정된 개회식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테니스가 날씨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스포츠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 하루였다.
그런 의미에서 동계올림픽 경기장을 테니스 전용 인프라로 재탄생시키는 구상은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한국 테니스의 구조적 약점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해답에 가깝다. 메인 실내코트 12,000석, 서브 실내코트 8,000석, 국제 규격 실내코트 12~16면...환상적이다.
중국·일본과 비교해, 특히 나날이 테니스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코트 증설과 자국 대회 수를 늘리고 있는 중국에 비하면 한 숨이 절로 나오는 우리나라의 테니스 시설 수준, 이 격차를 한 번에 끌어올릴 수 있는 규모다.
■ “이건 강릉만의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최기순 대회장의 말처럼, 이 도전은 강릉만의 문제가 아니다. 1987년부터 개최했던 우리나라의 유일 ATP250급 대회인 KAL컵 코리아 오픈이 관중 수 미달로 10년만에 폐지된 경험을 갖고 있고, WTA500이었던 서울 코리아오픈이 시설 관리 부실로 2년 만에 다시 250대회로 강등된 현 시점, 남 탓 하기 전에 우리나라 테니스를 이끌고 있는 테니스 리더들이 가장 먼저 책임을 통감해야 하고, 아울러 한국 테니스계 전체가 책임과 과제를 함께 짊어져야 한다.
강릉 챔피언스 테니스대회는 단순한 아마추어 대회가 아니었다. 한국 테니스의 도약을 위한 첫 번째 신호탄이었다. 지금은 다소 무모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활용하지 않고 잠겨 있는 2019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장을 테니스 코트로 전환할 수만 있다면, ATP500대회를 유치하는꿈은 결코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한국 테니스의 판을 바꿀 수 있는 강릉의 도전에 더 테니스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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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스케이트장 테니스 코트 전환 14면(▲)과 16면(▼) 설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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